2008. 10. 21. 14:52

해외 명문 대학의 입학 면접 질문에 답해본다

University of Cambridge

University of Oxford



'당신이 포도라면 씨 없는 포도와 씨 있는 포도 중 어느 쪽이 되고 싶은가' (케임브리지대 약학 전공)

- 내가 사람이라면 먹기 좋은, 씨 없는 포도를 먹기 원할 것이지만 내가 포도라면 씨 있는 포도가 되기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인생을 통해 배운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어 인간의 삶의 있어서의 진보를 꿈꾸기 때문이다. 만약, 포도가 이런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이 없더라도 나를 미루어 보았을 때 자신과 유사한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본능이므로, 그러한 본능을 식물인 포도도 가진다는 가정하에, 포도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고로, 나는 씨 있는 포도를 택하겠다.
이 질문은 나로, 삶의 목적을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씨 있는 포도는 그 삶의 목적을 씨 없는 포도보다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을 더 품고 있다. 씨를 품음으로써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을 통해 힘든 삶의 과정 속의 역경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그 힘을 통해 포도의 질 또한 상승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의료에서 환자의 정신 상태에 따라 약물 치료의 효과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학계 보고와 연관된다.

“산에 오르려고 애쓰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인가”(옥스퍼드대 신학과)

- 산에 오른다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을 비유로 나타낸 말고 같다. 성경에 바벨론 탑을 쌓던 인간들을 신이 벌주기 위해 사람들간에 언어의 장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현대에는 과학이라는 바벨탑으로 신에 대해 도전하는 것이 아니나며 주의하는 목소리가 많다.
다시 질문을 해석하자면, 신에 대한 도전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인가인데, 전지전능자에 대한 도전은 빈번히 도를 넘은 자기 우월감을 낳고, 그로 인해 가치 판단의 기준 모호 내지 해체를 유발한다. 하지만 이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사회의 공공선인 도덕을 해치지 않는 가벼운 오만으로 남을 수 있고, 다른 관점에선 다른 사람에게 심한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처사가 될 수 있다. 질문의 '도덕'을 '법'처럼 강제성이 띈 것으로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은 요약이 논지를 잘 설명한다. "등산이 금지된 산을 오르는 것은 불법이고, 마을 뒷 산에 오르는 것은 합법이다."
더 깊게 들어가 '신을 왜 믿고, 도전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도덕을 넘어선 인류가 나아가야할 도(道)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이렇게 우유부단(優柔不斷)한 대답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자신을 문학작품에 비유한다면, 자네는 '시'인가, '소설'인가?"(옥스포드대 영문학과)

- 문학의 여러 형태가 있지만 가장 대중적인 두가지가 바로 이 '시'와 '소설'이다. 시는 길이에서 짧고 간결하며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적이고 함춤적인 경우가 많다. 소설은 그 길이가 문학의 어느 형태보다 길고, 그 길이가 긴 만큼 구성을 통해 주제의 다양한 측면들을, 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키가 작고 몸도 왜소한 편이다. 그런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시를 많이 닮은 것 같다. 그리고 상황의 설명과 대화로 의사소통하는 것보다 의미를 함축하여 짦은 문장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나는 '시적'이다. 절제가 필요하지만, 수사(修辭)를 좋아하는 취향도 거기에 한 몫 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성공적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까”(옥스퍼드대 역사학과)

- 혁명을 성공적이게 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필수 요소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분명한 문제의식
  • 설득력있는 철학적 사유
  • 실천하는 용기
  • 승리 후의 절제
분명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혁명을 시작할 수도 없다.
설득력있는 철학적 사유가 밑받침되지 않은 혁명은 전개과정에서 의구심을 품은 많은 동지들이 떠나갈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 혁명의 불분명해진 목적 의식은 행동의 동기를 쉽사리 잃는다.
뜻을 아무리 고귀하게 품은 사람일지라도 앞 마당을 쓸만한 실천력(조식 선생이 퇴계 이황에게 보낸 편지 - 링크 문서에서 마지막 문단)을 겸비하지 못했다면 세상에 왔다 똥만 싸다가 죽은 장삼이사(張三李四) 중 하나에 불과하다.
혁명에 성공하면 부와 명예가 뒤따르기 마련, 여기서 많은 혁명가들이 초심을 잃고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쿠바 혁명이 끝나고 자신을 신처럼 추앙하던 사람들을 뿌리치고 다시 볼리비아로 혁명의 정신을 이어간 체게바라를 본받아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는 이렇게 답변을 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발한 대답을 하시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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