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7. 15:50

11월 셋째 주 일요일은 추수감사절, 그 의미는?

한국 기독교의 3대 명절을 꼽는다면 부활절, 성탄절, 그리고 추수감사절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념하는 절기인 부활절, 성탄절과 더불어 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인 추수감사절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17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6세기 중반,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양심의 자유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무리들이란 이름의 ‘청교도’들은 정치권의 박해가 심해지자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마침 신대륙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이주자가 늘던 시기라 청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주를 감행하게 됩니다.

1620년 9월 16일 출항한 메이플라워 호에는 성도(Saint)가 41명, 런던에서 모집한 외부인(Strangers)이 61명이었습니다. 항해 중 1명이 사망하고, 상륙과 더불어 병자가 속출해 12월에 6명, 1월에 8명, 2월에 17명, 3월에 13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추위, 굶주림, 풍토병, 야수의 습격으로 절반이나 죽어갔습니다.

1623년, 열심히 개척지를 일구고, 씨를 뿌리고, 가꾼 결과, 마침내 가난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의 추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생산량이 충분했기 때문에 곡식을 가죽이나 다른 상품과도 교환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풍족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수감사 축제를 열어 그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인디언을 초대했고, 또 인디언들은 사슴 다섯 마리와 옥수수, 대구, 메기, 거위고기 등을 마련해 응대했습니다.

청교도들에게 추수감사절의 세 가지 의미를 띄고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살아남은 청교도들이 수많은 위협에서 생존을 쟁취한 감정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의 감사야말로 진실 된 감사일 것입니다.

둘째는 자유와 새로운 삶의 시작에 대한 것입니다. 자유, 그것은 구속을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진귀한 값이 있는 단어입니다. 박해 없이, 자기 양심의 명령대로 예배하고 찬송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 마음껏 예배하는 자유야말로 이들 청교도들에게는 가장 값비싼 대가일 것입니다. 새로운 땅, 새로운 기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사실은 그들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를 드러내게 했습니다.

셋째는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어 얻은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그 감격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추수의 기쁨과 감격은 직접 땀 흘려 농사짓지 않은 사람은 맛보기 힘든 것입니다.

아래의 정감 어리고, 우수에 찬 듯한 그림은 밀레의 <만종>이란 작품입니다.

밀레의 만종

밀레(Jean Franiois Millet : 1814-1875) 1857년, 캔버스 유채/ 파리, 루브르 미술관

밀레의 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만종>은 하루의 노동이 끝나고 교회의 저녁 기도회 종소리가 들려오자, 젊은 부부가 서로 마주 서서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생활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풍경이 인류의 영원한 모습이라 생각했던 밀레는 캔버스 위에 이렇게 농부의 삶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그림에서 제가 느끼는 바는, 생활 속에서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 입니다. 한 눈에 보아도 부유하지 못한 저 농부는 오늘의 노동으로 끼니를 해결할 소출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반면, 물질만능주의, 학벌주의 등의 사회 관념에 머물러 삶의 가치를 쉽게 망각하고 있는 요즘 세태가 대비되어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제 삶 속에서 사소한 것, 어쩌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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