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2. 17:05

포도가 미워! <분노의 포도> DVD 리뷰

10월 테마데이 마니또 선물 교환식 때 받은 것을 여러가지 바쁜 사정이 있어서 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주말에 보았다. 선물 교환식 때 주성치님으로부터 이 DVD를 선물받았다. 방 안의 불을 끄고 감상에 들어갔다. 요즘 영화와는 다르게 와이드가 아니라서 와이드가 아닌 내 모니터 화면에서 꽉 찬 영상을 볼 수 있었다.
20세기 폭스 인트로가 나온다. 오랜만에 보는 흑백 영상과 오래된 필름처럼 효과가 멋지다. 아뿔사, 영화 끝까지 이어지는 이 효과... 이건 효과가 아니었다. 1940년작의 흑백 영화이다. -_-...

영화의 주된 흐름은 1930년대 미국의 경제상황과 심각하게 맞물려 있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주인공 탐 조드(Tom Joad)가 오클라호마의 가족을 찾는 발걸음을 시작으로 당시 사회상을 바라본다.

오클라호마는 탐이 없는 사이 많이 변해있었다. 오클라호마는 캔사스, 콜로라도, 뉴멕시코, 텍사스 등의 대평원지대와 더불어 제 1차 세계 대전 중의 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무계획적으로 농경지화 되었는데, 1933년에 일어난 대한발(The Great Drought)에 의해 농작물은 전부 죽고 땅은 말라버렸다.

게다가 지역 농장주들은 소작농을 내쫓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계식 수확을 위해 트랙터를 도입했다. 트랙터를 몰고 집을 비우라는 말을 듣지 않는 소작인의 집을 철거해버리는 사람은 바로 농장주에게 고용된, 이웃의 아들내미였다.

오클라호마 주의 수천 세대에 달하는 이들은 불모로 변한 땅을, 그리고 머물고 싶어도 농장주에 의해 내쫓김을 당했다. 그들은 가재도구를 팔아 고물자동차, 농업용 트럭에 짐을 싣고 서부로 향했다. 그들이 붙든 마지막 희망은 손에 들린 <캘리포니아 인부 800명 모집>이라는 전단지였다. 대공황 와중에 실업자의 수는 이들 농민들에 의해 더욱 늘어만 갔다.

이렇게 집을 잃고 일할 거리를 찾아다니는 빈곤한 농민을 가리키는 Okie라는 비속어가 생겨났다. 대부분 오클라호마 출신인 절박하고 가련한 이들을 얕잡아 일컫는 표현이리라.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묘사한 존 스타인백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1939년 베스트 셀러이며 퓨리처상 수상작이 되어 1930년대의 미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같은 해 존 포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것이 바로 이 영화다.

똥차타고 가기엔 꽤 먼거리... 도중에 사막도 거쳐가야한다.


다시 영화 안으로 돌아와, 탐은 캘리포니아에서 부조리와 부딪히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수천명의 인부들로 인해 생긴 노동력 과잉을 이용, 악덕 주주의 저임금 횡포는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생계 위협을 면하기 어렵기에 이른다. 돈독이 오른 농장주에게 소작농들은 일하는 기계에 불과했다.

탐은 부당한 노동력 착취의 악덕 주주를 고발하고 파업 등을 선동하며 인권 쟁취를 위해 노력하는 목사를 보고 '롤모델'로 삼기 시작한다. 악덕 주주는 이 목사를 불순분자의 우두머리로 인식, 깡패를 고용하여 곤봉으로 때려 죽인다. 이를 본 탐은 다시 분노를 못이겨 그 깡패를 다시 죽인다.

살인자로 다시 낙인이 찍힌 주인공 탐은
노동자의 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심한다. 내 몸이 죽더라도 이 정신은 투쟁이 있는 곳에, 농부들의 일터에,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말을 어머니와의 작별을 고하며 읊조린다.

옛날 영화의 특징은, 화려한 영상미 대신 주로 대사로 그 의미를 전달하는 데 있다. 21세기의 첨단 컴퓨터 그래픽 세대들에게 그런 내용 전개는 조금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요즘의 정크 푸드같은 영화들을 볼 때 웃고만 있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영화 곳곳의 상징성이 보다 뚜렷하다. 끝없고 끈질긴 삶에 대한 생명력은 탐의 어머니를 통해, 힘든 상황 속에서 희망을 놓지않고 품어야함을 나타내는 임신한 몸의 탐의 누이, 그리고 시청자의 시선을 탐과 일치시키고 탐의 심경 변화를 시청자에게 전이시키는 전개는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담백하게 전달한다.

오늘 주성치님으로부터 영화 선택의 배경이 된 바를 들을 수 있었다. 1930년대 미국사를 생생히 전하고 있는 이 영화 <분노의 포도>는 박찬욱 감독이 감명깊게 본 영화 중 하나라고 고백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분노의 '포도'일까?
마치 출애굽기에서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찾은 가나안 땅처럼 기름져 보인 캘리포니아는 마냥 풍족하고 행복한 삶은 약속한 듯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눈 앞의 잘 익은 포도는 현실의 악덕 농장주의 부를 대변해, 소작농들에겐 분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포도'는 조드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떠날 것을 결정했을 때 탐의 할아버지가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 것에서밖에 언급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포도를 따다가 내 얼굴에 마구마구 문지를 거야!
약간 노망든 노인이다.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당일 아침, 안가겠다고 생때를 부려 진정제를 탄 커피를 먹여 싣고 간다. 캘리포니아에서 조드 가족이 일하게 되는 농장은 오렌지 농장이다. 영화에는 없는 소설의 내용이 더 있는 걸까?

캘리포니아의 '포도'하니까, 얼마전 송년회에서 마신 캘리포니아 산 Avalon 와인이 생각난다. [죠이의 와인집에서 함께한 08년 블칵의 송년의 밤~]

캘리포니아 주는 현재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지사가 다스리고 있다. 오클라호마 주브래드 헨리 주지사가 다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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