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10. 07:42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사실 나는 한국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

첫째로, 일부 목회자들(그러나 언론이나 교회계에 유명한 목회자)이 엉뚱한 말을 많이 한다. 쓰나미는 믿지 않는 자들을 벌하기 위해 하나님이 내린 벌이라든지, 쓰촨성 지진 참사에 대해서도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중국에게 당연지사이다'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둘째로, 교회가 예수교나 기독교가 아니라 이른바 '목사교'와 같은 이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목회자가 기복주의나 신비주의에 물들어 있어 '믿어야된다. 믿음이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믿음이 무엇인지 신자들에게 명확히 제시를 못해주고 있다. 단지 '무엇으로 천국갑니까?'라는 질문에 '믿음이다'라는 답을 할 수 있도록 쇄뇌 시키는 것같다. 그러므로 그 집회문화가 세상 사람들에게 '미신적이고 품위가 없어' 보이는, 바로 '개독교'라는 소리가 나온다. 아주 날카롭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런 부류들은 너무 애매모호하고, 정식 교파 이름을 달고 있어 이단으로 분류되지 못한 이단이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주일학교에 가면 성경구절을 하나씩 꼭 외워야했다. 나는 간식 선물을 받기위해 한번도 안 외워간적이 없다. 기도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장난치고 떠들때 나는 두 손을 모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외운 성경구절은 금새 잊혀지고 기도는 왜 하나 싶을 정도로 삶은 평범했다.
그래도 나는 지금 크리스천이다.
이 사실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대학교때 만난 한 간사(학생 지도 선생님 정도?)님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간사님을 통해서 나는 기독교에서 가중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랑'이 무엇이지 알게되었다. 그 사랑은 연인과의 사랑처럼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고, 나를 보고 웃어주길 바라고, 이야기를 나누어 주길 바라고, 스킨쉽하기 바라는 그런 바람들이 없는 단순한 일방적인 사랑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간사님은 그렇게 주는 사랑만으로도 삶은 기쁨이 넘쳐났다. 아무리 힘든 순간(간사님의 연인이 암으로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이 찾아와도 어렵긴 했지만 확실히 이겨냈다.

내가 재미나게 보고 있는 시트콤 <ㅋㅋ섬의 비밀>의 19화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섬에서 판매부 팀이 의미를 두고 기르고 있던 염소가 있었는데 김과장은 염소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고기를 먹어본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번뜩이는 소도(小刀)를 들고 염소를 잡으려는 순간 판매부 직원들의 합심으로 염소는 도망가고 김과장은 봄날의 망아지 마냥 쫓아간다. 쫓던 중 괴생물체의 습격으로 언덕 아래로 실족하게 되나, 착한 염소는 숙영지로 돌아가 판매부 직원들을 데려와 김과장을 구하게 한다. 김과장은 '내가 잡아 먹으려던 염소가 나를 구해줬다. 이 놈을 안면몰수하고 잡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식욕과 인정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고뇌하는 김과장

고뇌하는 김과장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데는 몇가지 조건을 각자 가지고 있다. 얼굴이 예쁜 사람, 돈이 많은 사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아는 사람과 같은 조건들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못 생긴 자식을 가장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조그마한 단칸방 신혼집을 마련한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는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고 말하고, 철 지난 최불암 시리즈로 헛 웃음을 유발하는 남자친구의 유머에 배꼽잡고 자지러지는 여자도 있다.

예수는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 원수 마저도 사랑하라고 말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한다. 원수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메달려 죽으면서 까지 그들을 사랑했다. 그들의 죄까지 짊어지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길 기도했다. 그 극한의 본(本)으로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김과장이 염소를 죽으려는 마음을 품었을 때 염소는 김과장을 증오했을까? 염소는 다시 자신을 죽이려고 할 수 있는 김과장을 살려주었다. 인정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김과장은 염소를 죽일 수 있는가? 극 중에는 죽이지 않았지만 '멍청한 염소.' 라며 금방 죽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다. 그렇게 예수의 십자가를 평가절하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교회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절하다. 교회가 세상을 심판하기전 교회부터 심판받아야 한다.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은 한쪽으로 치워둔 채 말하고 있는 교회의 집단 이기주의는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목회자는 정치인들처럼 횡설수설하는 것을 이제 그만해야한다. 기독교는 말 그대로(기독교의 기독은 Christ의 한국화 어휘다) 예수에 집중해야한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크리스천은 왠지 선뜻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태 속에서도 멋진 크리스천들이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으니 희망을 가져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고민 중인 크리스천이 있다면 작은 용기라도 얻길 바라며, '개독교'라 부르던 누리꾼 분들도 삶 가운데 좋은 크리스천, 좋은 교회를 만나 기독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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