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8.12.22 포도가 미워! <분노의 포도> DVD 리뷰 (12)
  2. 2008.12.03 다크나이트 - 질서의 이중성, 투페이스 하비 (3/4) (2)
  3. 2008.11.26 다크나이트 - 공포의 조커, "혼돈이 곧 공포다." (2/4)
  4. 2008.11.19 다크나이트 캐릭터를 브라우저에 비유해 보자! (1/4) (2)
  5. 2008.11.14 영화 지구, 인간 vs 동물 혹은 귀족 vs 서민 (6)
  6. 2008.11.07 한 남자의 과격한 슬픔 극복 프로젝트 - 퀀텀 오브 솔러스(약한 스포일러성 내포) (6)
  7. 2008.09.16 신기전(神機箭)의 놓치기 쉬운 명대사 (스포일러)
2008. 12. 22. 17:05

포도가 미워! <분노의 포도> DVD 리뷰

10월 테마데이 마니또 선물 교환식 때 받은 것을 여러가지 바쁜 사정이 있어서 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주말에 보았다. 선물 교환식 때 주성치님으로부터 이 DVD를 선물받았다. 방 안의 불을 끄고 감상에 들어갔다. 요즘 영화와는 다르게 와이드가 아니라서 와이드가 아닌 내 모니터 화면에서 꽉 찬 영상을 볼 수 있었다.
20세기 폭스 인트로가 나온다. 오랜만에 보는 흑백 영상과 오래된 필름처럼 효과가 멋지다. 아뿔사, 영화 끝까지 이어지는 이 효과... 이건 효과가 아니었다. 1940년작의 흑백 영화이다. -_-...

영화의 주된 흐름은 1930년대 미국의 경제상황과 심각하게 맞물려 있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주인공 탐 조드(Tom Joad)가 오클라호마의 가족을 찾는 발걸음을 시작으로 당시 사회상을 바라본다.

오클라호마는 탐이 없는 사이 많이 변해있었다. 오클라호마는 캔사스, 콜로라도, 뉴멕시코, 텍사스 등의 대평원지대와 더불어 제 1차 세계 대전 중의 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무계획적으로 농경지화 되었는데, 1933년에 일어난 대한발(The Great Drought)에 의해 농작물은 전부 죽고 땅은 말라버렸다.

게다가 지역 농장주들은 소작농을 내쫓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계식 수확을 위해 트랙터를 도입했다. 트랙터를 몰고 집을 비우라는 말을 듣지 않는 소작인의 집을 철거해버리는 사람은 바로 농장주에게 고용된, 이웃의 아들내미였다.

오클라호마 주의 수천 세대에 달하는 이들은 불모로 변한 땅을, 그리고 머물고 싶어도 농장주에 의해 내쫓김을 당했다. 그들은 가재도구를 팔아 고물자동차, 농업용 트럭에 짐을 싣고 서부로 향했다. 그들이 붙든 마지막 희망은 손에 들린 <캘리포니아 인부 800명 모집>이라는 전단지였다. 대공황 와중에 실업자의 수는 이들 농민들에 의해 더욱 늘어만 갔다.

이렇게 집을 잃고 일할 거리를 찾아다니는 빈곤한 농민을 가리키는 Okie라는 비속어가 생겨났다. 대부분 오클라호마 출신인 절박하고 가련한 이들을 얕잡아 일컫는 표현이리라.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묘사한 존 스타인백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1939년 베스트 셀러이며 퓨리처상 수상작이 되어 1930년대의 미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같은 해 존 포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것이 바로 이 영화다.

똥차타고 가기엔 꽤 먼거리... 도중에 사막도 거쳐가야한다.


다시 영화 안으로 돌아와, 탐은 캘리포니아에서 부조리와 부딪히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수천명의 인부들로 인해 생긴 노동력 과잉을 이용, 악덕 주주의 저임금 횡포는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생계 위협을 면하기 어렵기에 이른다. 돈독이 오른 농장주에게 소작농들은 일하는 기계에 불과했다.

탐은 부당한 노동력 착취의 악덕 주주를 고발하고 파업 등을 선동하며 인권 쟁취를 위해 노력하는 목사를 보고 '롤모델'로 삼기 시작한다. 악덕 주주는 이 목사를 불순분자의 우두머리로 인식, 깡패를 고용하여 곤봉으로 때려 죽인다. 이를 본 탐은 다시 분노를 못이겨 그 깡패를 다시 죽인다.

살인자로 다시 낙인이 찍힌 주인공 탐은
노동자의 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심한다. 내 몸이 죽더라도 이 정신은 투쟁이 있는 곳에, 농부들의 일터에,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말을 어머니와의 작별을 고하며 읊조린다.

옛날 영화의 특징은, 화려한 영상미 대신 주로 대사로 그 의미를 전달하는 데 있다. 21세기의 첨단 컴퓨터 그래픽 세대들에게 그런 내용 전개는 조금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요즘의 정크 푸드같은 영화들을 볼 때 웃고만 있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영화 곳곳의 상징성이 보다 뚜렷하다. 끝없고 끈질긴 삶에 대한 생명력은 탐의 어머니를 통해, 힘든 상황 속에서 희망을 놓지않고 품어야함을 나타내는 임신한 몸의 탐의 누이, 그리고 시청자의 시선을 탐과 일치시키고 탐의 심경 변화를 시청자에게 전이시키는 전개는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담백하게 전달한다.

오늘 주성치님으로부터 영화 선택의 배경이 된 바를 들을 수 있었다. 1930년대 미국사를 생생히 전하고 있는 이 영화 <분노의 포도>는 박찬욱 감독이 감명깊게 본 영화 중 하나라고 고백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분노의 '포도'일까?
마치 출애굽기에서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찾은 가나안 땅처럼 기름져 보인 캘리포니아는 마냥 풍족하고 행복한 삶은 약속한 듯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눈 앞의 잘 익은 포도는 현실의 악덕 농장주의 부를 대변해, 소작농들에겐 분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포도'는 조드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떠날 것을 결정했을 때 탐의 할아버지가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 것에서밖에 언급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포도를 따다가 내 얼굴에 마구마구 문지를 거야!
약간 노망든 노인이다.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당일 아침, 안가겠다고 생때를 부려 진정제를 탄 커피를 먹여 싣고 간다. 캘리포니아에서 조드 가족이 일하게 되는 농장은 오렌지 농장이다. 영화에는 없는 소설의 내용이 더 있는 걸까?

캘리포니아의 '포도'하니까, 얼마전 송년회에서 마신 캘리포니아 산 Avalon 와인이 생각난다. [죠이의 와인집에서 함께한 08년 블칵의 송년의 밤~]

캘리포니아 주는 현재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지사가 다스리고 있다. 오클라호마 주브래드 헨리 주지사가 다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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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3. 22:42

다크나이트 - 질서의 이중성, 투페이스 하비 (3/4)

리뷰를 한 번에 써야 되는데 질질 끌었네요. 맙소사! 그래도 좀 구차하겠지만 사나이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랬다고 괜한 짓을 한 번 해봅니다. 다크나이트 리뷰 4부작 중 세번째 포스팅, 투페이스 하비에 대해 알아봅시다.

저질(低質) 포스트에는 역시 짤방 필수!


아주 멀고도 먼 옛날 학창시절, 자기 딴에는 본분을 다한다며 까칠하게 굴던, 못난 범생이 반장을 겪어본 적 있으신가요? 조금만 떠들어도 이름 적고, 친구들은 종종 까먹을 때 준비물 안 챙겨온 적이 한 번도 없고, 숙제는 꼬박꼬박, 모범적이나 왠지 정이 안 붙여지는 그런 친구 말이죠.

제가 봤던 이름모를 만화에서는 그런 원칙을 잘 지키는 범생이 반장이 젤 나쁜놈으로 변합니다. 왠지 저는 거기에서 하비 덴트가 생각났습니다. 첫번째의 다크나이트 리뷰 포스팅에서 하비 덴트가 질서 선에서 질서 악으로 변했다고 했습니다. 그것과 연관지어 생각해 봅시다. 저 반장과 같은 하비 덴트는 어떻게 선에서 악으로 갑자기 변할 수 있었을까요?

전 두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분명한 '질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치관 결정의 '근원 부족'입니다. 질서는 규칙을 만들고 자기 행동의 일관성을 보장합니다. 직선으로 걸어가는 보행자와 같죠. 술 취한 사람을 혼돈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비틀비틀 걸어가거나 제자리를 맴돌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 의해 전진 방향이 바뀌게 되면 그 길로 방향을 틀고 다시 걸어갑니다. 방향의 전환이 한 번 일어나게 되면 뒤도 안돌아보고 매정히 걸어가죠. 왜냐하면 그는 질서를 따르는 것에 의심이나 두려움이 없거든요.

하비 덴트는 투페이스 하비로 방향 전환을 했습니다. 조커가 잠재적 가능성을 보고 바람을 잡긴 했으나 어찌되었건 근본적인 이유는 가치관 결정의 '근원 부족'입니다. 하비 덴트는 배트맨 처럼 선의지의 확고한 뿌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마냥 법이라는 규칙을 따를 줄만 알았지 법의 근원이 되는 선의 의미를 자각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옥소리씨의 간통죄 재판 결과(옥소리의 간통과 간통제의 폐지 by 강아지풀)가 생각나네요.

사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젊은 층을 위주로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효도는 왜 해야하는지, 국가에 대한 충성은 왜 해야하는지, 신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들이 기성세대와의 마찰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최근들어 급격화된 광고 매체 노출의 증가로 젊은 세대들이 일단 의심하고 보는 습관과 이성과 논리, 눈에 보이는 사실을 중시하는 성향이 이러한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가치관 정립의 '근원'이 분명해지 못했던 하비 덴트는 흔들렸습니다. 거기다가 질서 의식은 또 투철해서 조커의 꼬드김 한 번에 악의 길을 걷기로 합니다. 조커와는 다른 악인이 탄생한거죠. 투페이스 하비는 계획적이고 규칙이 있으며 목적이 있는(그것이 비록 잘못된 것일지라도) 악당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비 덴트의 행운의 동전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원래 하비 덴트의 동전에는 양면이 같은 면이었습니다. 가끔 동전을 던져서 행동을 정하곤 하는 듯했지만 사실은 앞면만 있어 결정은 실상 자신이 해 온 것입니다. 단지 자신의 불확실한 선의지를 이 행운의 동전에 의지해 이루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마음과 몸에 쓰라린 상처를 안겨준 화재가 있은 후 동전의 한 면이 새카맣게 타 버렸습니다. 이는 하비 덴트의 심정의 변화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는 앞면과 뒷면이 나누어진 동전을 들고 천역덕스럽게 예전과 마찬가지로 동전을 던져 결정을 합니다.

이제 하비 덴트가 질서 선이었다는 점에 의문을 품어 봅니다. 정말 하비 덴트는 질서 선이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그건 불완전한 선의지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냉혹하게 평가하자면 위선적이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위선적이다라는 것은 자신의 속마음과 행동이 다를 때 일컫는 말입니다. 내 마음 속으로는 '지금 경제가 어려운데...'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이 투자할 때입니다. 투자로 경기 활성화를 도모합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은 투자할 생각이 없으면서 말은 옳은 소리 한다는 것, 결코 입으로 의로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비 덴트 역시 인류애가 없는 법치를 말한다는 것에서 그런 위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의 다크나이트 리뷰 포스팅에서 질서 중립의 배트맨 - 다크나이트를 말하며 끝을 맺은 바 있습니다. 어둠의 기사. 그는 어떻게 그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다크나이트 리뷰의 마지막인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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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26. 22:04

다크나이트 - 공포의 조커, "혼돈이 곧 공포다." (2/4)


혼돈, 영어로 카오스(Chaos)는 저에게 LG(Lucky Goldstar)에서 나온 세탁기인 카오스 세탁기 때문에 알게 된 단어였습니다. 카오스 이론이 유명세를 타면서 세탁기에도 적용한 건데, 쉽게 말하자면 뒤죽박죽 세탁기 통을 돌리면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세탁기 보다 더 세탁이 잘 되더라는 것을 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혼돈이 곧 공포다"라고 말합니다. 혼돈이 왜 공포가 되는 것일까요?


혼돈은 질서 없음을 말합니다. 규칙성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측할 수 없고 불안정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인간은 그런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걸 불안해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번지점프대 앞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확실성이 공포심을 증대시킵니다. 특히,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20m는 그 불확실성이 공포를 증대한다는 말을 더욱 확실히 합니다. 그건 아마도 너무 높으면 죽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높이가 가장 공포심을 느끼게 해서 아닌가 싶습니다.

조커는 그런 공포의 성질을 간파했습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자는 돈으로 다스리면 되고, 명성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자는 명성을 쥐어주면 달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커는 무엇으로 달래나요? 그 생각이 미치면 공포에 빠집니다. 그는 아무것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질서를 조금이나마 움켜쥐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돈으로 그 질서를 파괴하고 심연의 공포로 빠져들게 합니다.

요즘 흉흉한 사회 소식때문에 그런지 길거리를 걷다보면 약간의 공황증을 느끼기도 합니다. 가만히 걸어가다가 '차에 갑자기 치이는 것은 아닌가', '저 사람이 내 지갑을 훔쳐가지 않을까' 하는 것 말입니다. '나' 밖의 세계는 혼돈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질서라는 저만의 세계를 생각하고 그 세계가 침범받길 두려워합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질서를 확립하고 완전한 선을 꿈꾸는 검사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하비 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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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19. 18:11

다크나이트 캐릭터를 브라우저에 비유해 보자! (1/4)

시대의 역작, 배트맨 - 다크나이트를 어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모종의 경로(?)를 통해서 본 다크나이트, 영화관에서 보았으면 더 좋았을 거란 후회를 해봅니다. 웅장한 사운드나, 두 눈을 가득 메우는 스크린 때문뿐만이 아닙니다. 이 좋은 작품을, 정당한 지불없이 보았다는 서글픈 아련함입니다. 마치 새색시의 아름다운 뒤태를 우연히 열린 방문 틈새로 훔쳐본 느낌일까요. 그래서 저는 이런 죄책감을 감상를 통해 조금이나마 갚아보려고 합니다.


영화 개봉일이 한참 지난 뒤라(종영된 지도 오래되었군요...-_-;) 리뷰들도 많이 올라와서 영화 자체를 논하는 리뷰는 블로그스피어에 스팸만 늘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악의 개념과 더불어 다크나이트에서 캐릭터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는 혼돈과 질서라는 측면을 심도있게, 아래와 같은 세분화된 주제로, 신선하고 말랑말랑한 리뷰를 준비했습니다.


1. 브라우저에 비유한 <다크나이트> 캐릭터 가치관 분석 - 조커, 하비 덴트, 배트맨

먼저, 주성치님의 웹 브라우저별 가치관분류라는 포스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던젼 앤 드래곤(D&D)류 롤플레잉 게임류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가치관' 캐릭터 분류를 통해 브라우저 생태를 조망하고 있습니다. 질서 선의 파이어폭스와 혼돈 악인 인터넷 익스폴로러만 보더라도 저작자의 의도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네요.


다크나이트의 캐릭터들도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가치관을 9종류로 뚜렷이 나누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지 모르지만 캐릭터의 커리커쳐를 그리듯이 그 특징을 확대해 해석해 보겠습니다.


조커는 혼돈 악입니다. 먼저 조커는 악을 대표하는 악당입니다. 하지만 악당 캐릭터로 굳힌 그이지만 그는 여느 악당처럼 돈을 탐내지 않습니다. 엄청난 돈을 휘발유로 태워버리는 행위에서 그것을 분명히 합니다. 여색을 밝히지 않습니다. 레이첼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약간의 여성 혐오를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나 대체로 여성에 대한 편력은 그다지 없어 보입니다. 그의 범죄 동기는 맹목적인 혼돈 유발입니다.

조커는 제멋대로 난폭하고, 예측할 수가 없고 혼돈의 확산에 전념합니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치밀한 계획가처럼 보이는 면도 있으나 그의 계획은 항상 우연성을 보여주고 있어 혼돈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킵니다. 사회가 의존하는 질서들에 대한 파괴를 지향하기 때문에 배트맨을 어느 때보다 곤경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럼, 말썽꾸러기 IE가 조커를 나타내게 되는군요. 다음으로 하비 덴트를 살펴봅시다.


초반의 하비 덴트는 질서 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완고한 질서 선 의지는, 경찰계의 부정, 비리를 넘겨 보지 못해 고든과의 마찰을 일으킵니다. 악의 도시, 고담 시는 이런 강력한 질서 선의지가 필요할 지 모릅니다. 그래서 배트맨은 그를 '빛의 기사(Light Knight)'라고 부르며 고담 시의 새로운 영웅으로 물심양면으로 추대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혼돈 악의 상징, 조커는 그를 질서 선에서 질서 악으로 변화시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이어질 <질서의 이중성, 투페이스 하비> 포스팅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질서 악의 화신이 된 '투페이스 하비'는 이제 그의 성정과 얼굴처럼 이중성을 뚜렷이 갖춘 동전을 튕기며 확률이라는 질서로, 자신의 불완전한 이중성에 대한 위안을 삼습니다. 레이첼의 죽음과 이를 방관한 무질서의 사회상을 증오하며 아직 그 질서를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뚜렷한 악으로 변합니다.

다시 브라우저 분류법을 살펴보면, 하비 덴트는 파이어폭스에서 네츠케이프로의 퇴보로군요.


마지막으로 배트맨입니다. 배트맨은 어떠한 가치관일까요, 하비 덴트와 같은 질서 선인가요? 배트맨은 뚜렷한 구분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니까요! 그는 스토리가 전개해 가며 자신의 가치관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이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전편인 비긴즈의 내용을 되뇌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도님에 의해 살해되자 그는 복수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혼돈에 빠집니다. 하지만 동굴 속의 체험, 두려움 극복의 여행 등을 통해 배트맨이라는 질서를 확립하고 선의지를 키워갑니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는 당시 고담 시에서 필요한 것이 '완전한 질서 선'이란 자각은 하고 있었으나, 배트맨이 그 질서 선을 완벽히 내세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때 나타난 검사, 하비 덴트는 그러한 역할에 적합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조커라는 혼돈 앞에서 질서 악으로 돌변해 버린 그를 보며(이는 질서 선의 성질을 나타냅니다. 후에 포스팅 될 <질서의 이중성, 투페이스 하비> 참조) 배트맨은 '다크 나이트'로의 포지셔닝을 해냅니다. 그것은 바로, 질서 중립입니다. 선을 상징하는 영웅도, 악을 좇는 악당도 아닌, 중도의 미를 건설한 '다크 나이트'입니다.

브라우저 경쟁 구도에서 빠져나와 이상적인 브라우저 서포팅을 목표합니다. KDE 프로젝트HTML 렌더링 엔진 KHTML이 다크나이트(배트맨)를 나타내게 되네요.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삼발이와 같은 세 명의 주요 인물, 조커, 하비 덴트, 배트맨의 가치관을 브라우저에 비유해 보며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주인공 배트맨은 그 어떤 악당보다 조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조커는 그의 질서를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질서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질서이며, 고담 시(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다음 포스팅 <공포의 조커, "혼돈이 곧 공포다.">에서는 이렇게 배트맨의 질서를 흔드는 조커의 혼돈, 그 혼돈에 대한 정의와 의미를 깊게 이야기하는 장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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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14. 17:34

영화 지구, 인간 vs 동물 혹은 귀족 vs 서민


영화 지구의 마지막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옵니다.

지구 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이어진다면 북극곰은 야생에서 2030년이면 멸종됩니다. If the global climate continues to warm at its present rate, polar bears may be extinct in the wild by 2030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구의 온도 조절 능력이 파괴되어, 지역의 자연적인 물 공급이 점점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With global warming disrupting our planet's weather systems supplies of freshwater are becoming increasingly unpredictable
해양 기온의 상승으로 많은 플랑크톤을 죽게 되어, 혹등고래와 같이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해양 생물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Rising ocean temperatures have started to kill the plankton on which humpback whales and most other sea life depend

그리고 어딘가에서 편안히,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 지구 보전에 대한 동기 부여의 문구를 던집니다.

변화를 만들기에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But it is not too late to make a difference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봅시다. Find out what you can do

지구에서 인간은 많은 생명체 중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 종을 없앨 수도 있을 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죠.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기 힘들죠. 인간이 밀집적으로 활동하는 영역에 그런 자연 생태계가 가시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아이러니와 함께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여유를 가지고 영화를 볼 동안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과 사투를 벌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런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왠지, 우리의 욕심 때문에 동식물들이 지구의 한편 구석에서 생의 치열함을 느끼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배부른 정치인들도 그들의 욕심에 가려 서민의 경제 형편을 모르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씁쓸해지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아래는 이 영화를 만든 곳의 공식 사이트입니다. Love Earth!
http://www.loveear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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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7. 11:13

한 남자의 과격한 슬픔 극복 프로젝트 - 퀀텀 오브 솔러스(약한 스포일러성 내포)

사랑을 잃은 남자의 마음에 위로 한조각(Quantum of Solace) 남아있지 않은 상태의 본드.

약간의 스포일러
영화 보기 전에 봐도 무방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사람에 따라 분노를 느낄 수도 있는 영화 내용 포함.

본드는 베스터를 잊지 못하고 복수와 임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자존심 센 본드는 M 앞에서 애써 자신의 감정을 추스린다. 그 위태한 줄다리기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M은 애가 타고, 본드에 대한 신뢰를 의심하며 괴로워한다.

부조리한 재앙 앞에 선 인간은 쉽게 복수를 꿈꾼다. 그 대상이 나와 같은 인간일 때 복수에 대한 갈망은 극에 달한다. 본드는, 부모님의 원수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카밀에게 '단 한방이면 돼'라며 복수를 종용한다. 하지만 복수가 끝나고 허무라는 절망감에 빠져있는 카밀에게는 '죽은 자는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를 권한다. 뭔가 줏대가 없어 보인다...-_- 그의 빛나는 주먹처럼 툭툭 내지르는 본드.

마지막에서 본드는 복수를 카밀에게 처음 말했던 것 처럼 '단 한방'으로 끝내지 않았다. 본드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원수를 살려둔다. 그는 '쿨한 공무원'이니까. -_-;; 왠지 자신의 복수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을 정해보기 전에 카밀에게 넌지시 던져보고 다시 생각했던 것 같다. 이기적인 본드, 잔인해. 카밀 지못미.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인생을 당신의 손 끝 하나로 결정할 수 있게 될 순간이 찾아왔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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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 16. 11:40

신기전(神機箭)의 놓치기 쉬운 명대사 (스포일러)

저 소나무는 고려 때 것이냐, 조선 때 것이냐?
설주(정재영)는 호위무사 창강에게 화약을 만들 수 없다고 뿌리치고 나서 절에 있는 형, 금오(이경영)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금오에게서 위 대사와 함께 화약을 만들라고 권하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설주가 우리나라의 중대사를 승낙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나랏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부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지요. 금오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오와 친 형.동생 사이인지 그냥 아는 형.동생 사이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둘의 부모님이 그 일로 돌아가신 건 대사에서 확실히 나옵니다.) 그래서 금오는 절에 온 것이라고 하죠.

금오는 자신의 부모도 나랏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돌아가셨지만 설주에게 다시 그 나랏일을 하도록 권합니다. 다시 뒤에 돕기도 합니다. 금오의 그런 생각의 이면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위 대사입니다.

산 속의 소나무 중에는 고려 때 부터 자란 소나무도 있고 조선 때 부터 자란 소나무도 있습니다. 고려-조선 교체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과 같은 역사가 지나갔지만, 소나무는 고려 때 자란 소나무든, 조선 때 자란 소나무든, 서로 어울려, 세월이 무상한 마냥 산 귀퉁이에 무심히 서있을 뿐입니다.

이방원은 고려조 충신 정몽주에게 조선조 건국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여가'로 알려진 아래의 시조를 읊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긔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그러나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했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는 이성계의 정황을 살피기 위해 그를 만나보고 귀가하던 중, 개성 선죽교에서 조영규와 그 일파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금오는 불교의 귀의하면서 인생사의 허망함을 느꼈습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는데 개인의 감정 때문에 고민과 번뇌가 생긴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동생인 설주에게 지나간 부모의 억울한 죽음은 잊고, 다시 억울한 죽음이 있더라도 대의를 위해 화약을 만들라고 설득합니다. 그 신념의 확증은 손가락이 잘리고 칼에 베여 죽는 순간까지 비밀을 지킨데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나무의 비유로 '세월의 무상함'과 '호국의 충'을 같이 설한다는 점에서 모순이 없지는 않습니다. 또한 대량살상무기의 개발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킬 수 밖에 없던 당시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영화관에서 보실 분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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